구술생애사를 통해서 본 경북여성의 삶
안동 내방가사 전승자 조남이 할머니 이야기
조남이 할머니는 1928년 경북 청송 안덕에서 1남 6녀의 맏딸로 태어나셨습니다. 일제시대 처녀공출을 피해 꽃다운 열여섯에 양반가문에 시집을 간 조남이 할머니는 첫딸을 낳으면서 시아버지의 혹독한 시집살이를 겪게됩니다.
2남 5녀를 두고 남편이 죽자 여자로서 하기 힘든 막일과 건설현장 '함바'를 경영하면서 7남매의 공부와 혼사를 감당하는 등, 사별후 할머니는 오로지 어머니로서의 사랑과 책임이 아니면 견딜 수 없는 모지고 힘든 삶을 사셨습니다. 하지만 조남이 할머니는 힘들 때 마다 외할머니와 어머니에게 배운 가사를 읋고 지어왔습니다.
그렇게 짓고 읋어온 가사가 지금 다시 큰딸인 안동내방가사전승보존회 이선자 회장에게 이어져 4대째 가사를 전승시켜온 건 물론, 우리나라 내방가사의 큰 맥을 잇는 발판이 되었습니다.
조남이 할머니 연보
1928년
경북 청송 안덕에서 1녀 6남중 장녀로 출생 어린시절, 어머니에게 한글을 배우고, 어머니와 외할머니가 가사 읊는 것을 들으면서 자연스럽게 가사를 짓고 낭송하게 됨
1943년(16세)
일제시대 처녀공출을 피해 퇴계 13대손인 이영호와 결혼
1945년(18세)
첫딸 낳고 시아버지에게 딸 낳았다고 심한 구박받음
1946년(19세)
첫딸 돌 지나서 사망, 시아버지 구박으로 자살시도
1959년(32세)
첫째아들 출생, 아들 낳으면서 시아버지에게 인정받음
1962년(35세)
둘째아들 출생
1964년(37세)
시아버지 사망
2005년(78세)
일본NHK 한류여류문화세계 내방가사 방영
2006년(79세)
'전국 노인솜씨경연대회'대상
'전국 노인솜씨경연대회' 특별상
2007년(80세)
현재 큰딸과 함께 내방가사 전승에 힘쓰는 한편, 2남 5녀 자녀들의 집을 오가며 건강하게 생활하고 있음
시집간 지 3년 만에 딸을 낳고 시어른이 꾸지람을 시작하는데
나는 1928년생으로 성은 함안 조가고 태성은 경북 청송 안덕 사람이라. 괴포선생 큰집에서 장녀로 났어. 차녀공출 때문에 이 군데 저 군데 말해도 그래도 양반은 양반 끈 딸는다고 진성 이씨에 출가를. 진성 이씨에 선정파라 카만 퇴계선생 직계손인데, 13대손과 결혼을 했어. 나도 양방이고 배울 때도 우리 어매한테 좀 마이(많이) 배웠는데 시집 오니까 좀 서툴더라. 우리 친정이 그대로는 장한 집이랐어. 일제 때 처녀공출 때문에 열여섯에 결혼했는데 우리 시어른이 성품이 하도 완악해 가지고 시집살이를 좀 마이 했어.
시어마님은 서시어마님이었는데, 사람은 팔자가 어떻다보면 또 그럴 수도 있다 싶었고 또 그 어른이 오셨기 때문에 진담배를 키워가지고 추성을 했다고 생각하고 돌아가신 어른보다 더 대단하게 생각했어. 시어마님하고는 모녀간 같았지. 내가 산행가여(서) 3일부터 어머님 어머님하고 다정케하니까 그 어른도 나를 며느리로 생각 안하고 딸같이 생각했지. 시어른도 영채는 무서워도 그렇게 그렇진 않았는데, 내가 그만 시집간 지 3년만에 처음 딸을 낳아뿌렸어.
삼형제 중에 막내아들이긴 해도 내가 시어른을 모셨는데, 딸을 낳으니까 이 어른이 분이 나서, 들어오다가 시어머님이 걸어놓은 금 새끼를 낫으로 탁 쳐버리고 그만 꾸지람을 시작하는데, 집구석이 안될라꼬 딸이 난다고 호통을 마이 받고.. 근데 그 딸이 첫돌 지나고 죽었어. 인생이 불쌍찮아, 내가 가마이(가만히) 우다가(울다가) 다글리가(들켜서) 참 내가 못 살 뻐했어. 딸 그거 죽었다꼬 운다고. 시아버지가 자꾸 호통을 치시니까 내가 무서바서 못 배기겠더라고.
그때는 또 신랑이 일본병대 훈련 받으러 가서 한 달에 한 번 휴가를 오는데, 신랑이 있다캐도 어른이 완악하니까 뒤가 겁나서 이야기를 할 수 없는데, 오면 한이틀 자고 가니까 서먹서먹하니 말을 못하겠더라고 그래서 한번은 에이구, 내가 이래가 사는게 아니다 싶어서 끄내끼(끈)갖고 목을 맸어, 새복(새벽)에. 근데 목맨 사람이 죽으매 무슨 소리를 질렀는가 우리 둘째 시숙이 이웃에 살았는데 새복에 우리 집으로 낫갈로(낫갈러) 오다가 (무슨 소리를 듣고)문을 탁 열고 들어오이(내가) 그만 드러졌거든(늘어져 있었거든). 고마 낫으로 끈을 끊어놓고 막 야단을 치더만은. 아이구 죽지도 못하고 이웃사람 알면 우야꼬 싶어서 겁을 냈어. 그런데 그라고 나니까 시어른이 꾸지람이 좀 적더라고.
딸 다섯 낳고 절에 가서 백일기도해서 큰 아들을 낳았어
첫딸 죽고 난 뒤로 딸을 넷을 더 낳았는데, 내가 시아버님한테 옷을 몇번 쥐띧겼어(뜯겼어). 아들 작개 보낼라카니까 장개 갈 사람이 안갈라칸다꼬. 그때 묵계 전가라고 이웃에 살았는데, 일본 갔다 와가지고 살림이 어려웠다. 그래가 논서마기만 주면 나이 많은 딸을 재취로 준다카는데 딸을 주면 나는 밀리 나가는 거지.
그때가 죽은 딸까지 딸만 다섯을 낳았을 때라. 그래 그 사람이 우리 남편한테 장개를 가겠다는 결단을 들어야 되는데, 이 신랑이 피해 달라 갔뿌는 기라(달아났는 기라). 그러니까 고만 시아버님이 분이 나가 내한테 달라드는데 "아이고 아버님요, 저는 안크캤니더"카니까, "니가 안그라면 와 도망가노. 니가 장개 못하게했제?"카면서, 치마주름 쥐땡기면 옷이 띧기나가고... 그런 광경을 몇번 당했어.(웃음)
그랬는데 내가 절에 가서 백일기도해서 우리 큰아들을 낳았어. 그 다음에 또 둘째아들이 낳거든. 둘째아들 세 살 때 시어른이 돌아가셨어. 빈소에 가여 곡을 하면서 다른 사람 안 듣게 "시아버님, 돌아가셔도 영혼이 계시거든, 극구 기대하던 손자 둘이 이쁘게 크고 있으니까 살펴달라"고 울면서 그랬어.
평생 가사를 일기처럼 썼으니까 가사는 내 삶하고 같아
가사는 클 때 우리 칭정 어매한테 배았는데, 우리 외할매가 함안 조가라. 외조모 친정이 경주 양동 이씨였는데, 친정곳에 가서 살아가지고 경주에 계셨어. 그 집도 대대로 글집이었어. 우리 어매는 또 그 어머니한테 배았을끼고. 나도 친정에 칠남매요. 딸은 내 하나고 아들은 육형제고. 그래 칠남맨데, 내가 동생을 밤으로 인제 일제시대 때는 삼비(베)도 공출되야되고 면도 공출되야되고. 가마이 해가지고 밤으로 가마이 찌는 기라. 가마이 짜마, 나는 인자 거 동생들 업고, 앉았다가 등어리 업혀가지고 자면 자불대로 툭툭 때린다. 니 그래 자뿌면 고꾸랑 기역자도 못 배운다 일나라. 카매. 그래가지고 얼라 눕해놓고 이래 앉으면 어마이는 방 귀쿵이에 앉아가 비를 짜멜랑, 호랑불을 걸어놓고 그래 인제 어매가 이르는기라. 그 뭐 김기목이라고 인제 동네사람 택호도 쓰고, 머 가이가 가다가 거고 고길자로, 김기목이라고 그래 썼다고 어매는 부르면 나는 쓰고, 쓰면 또 어매가 보고 또 틀린 다고, 그래 인제 다불대로 여기다가 무슨 자로 써라카고, 이래 내가 쪼맨할 떄 배웠다고.
시집와서는 여럿이 보는데서 오(외)우고 하는 건 못하지만, 시어른이 명절 저녁으로 "새사람 여 드온나"카면 꼼짝없이 드가지고. 예전에 <한양가>도 있고<유충렬전>도 있고 <심청가>도 있고 <사씨남정기>도 있잖아. 책을 내놓고 "오늘은 <한양가>일러라(읽어라)."카면 몇 시간 일러주고 "오늘은 <심청가> 일러바라"카면 또 그것도 일러주고... 그런 가사를 마이 일러드렀어. 신랑은 시아버지가 "새 사람 여 들온나"카시면 "와 부르는고"카다 듣다보면은 "소설 한 권 일러라"카시거든? 그러면 기분 좋아하고... 내가 가사하는걸 상당히 자랑스러워했어.
그런데 우리들은 속에 쪼끔 한스러운 일이 있으면 그걸 누구한테 말을 못하잖아. 집밖에 사람 알만 내가 축이 나니까. 그러니까 내가 글로 짓는 거야. 글로 고마 소회를 하는 거야. 평생 가사를 일기처럼 썼으니까 항상 가사와 같이 했지. 내 삶하고 같은 가사라고 보면 돼
외조모로부터 어매, 내, 우리 딸까지 4대가 이어온 가사
지금 큰딸이 안동내방가서전승보전회장을 하고 있는데, 우리 외조모 때부터 했으니까 우리 어매, 내, 우리 딸 해서 4대가 하고 있는 거라. 내가 하고 치울 줄 알았는데 큰딸이 받아주니까 내가 마음 속으로 기쁘지. 없어지는 걸 다시 살려주는 걸 보이 대단타, 싶고 내가 저녁에 가사를 한곡씩 오우면 딸이 어릴 때는"어매, 무신 소리 그걸 하노?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맨치로"그캤는데 그카면 내가 치았뿌렸거든. 그런데 요새 지가 가사를 하는 걸 보면 내 마음으로는 장해.
요새도 가사를 짓지. 최근에는 2003년도에 서울 청계천 도로 없어지기 전날, 큰 아들하고 청계천 갔다 와서 지은<청계천 개봉가>가 있는데, 어디 모임에 가서 하니까 다들 좋아하대. 나이가 많아서 이제 많이 다니지는 못하지만, 요새도 항달에 한두번은 무슨 교수들 모임이나 각 문중에서 종가행사할 때 부르면 딸이랑 같이 가. 가서 이르면(가사를 읽으면) 좋아들 하지. 어떨 때는 좋다고 자꾸 하나 더 하라카고해서 1시간 정도 한 적도 있어.
아들딸이 저거 아버지가 마이 베풀매 살아서 그런가 다 잘 살아. 저거 아버지가 들에 갔다 오면 항상 거지를 달고 와서 먹이고 빈방에 불너가(넣어서) 재와(재워) 보내고 그랬어. 밥이 모자라면 자기는 낮에 마이 묵었다카면서 거지를 주라카고. 그래가 큰딸이 밥 해대면서 애먹었지(웃음). 내가 살면서 허튼 소리나 허튼 행동은 안하고 살아왔으니까. 아들딸들이 어매 존경스럽고 자랑스럽다고들 해. 행복하지(웃음)
<내용 및 이미지 출처ㅣ 구술생애사를 통해서 본 경북여성의 삶, 경북여성정책개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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